정가와 서양음악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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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와 서양음악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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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과 억양

서양음악은 대부분 약박에서 시작하여 강박으로 끝나고, 우리 음악은 강박에서 시작하여 약박으로 끝난다. 즉 우리 음악은 항상 장고의 양편을 함께 치는 합장단으로 시작한다.
이 현상은 나랏 말의 특징에서 온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고 그 나라 語法을 바탕으로 하여 그 나라 음악의 어법이 이루어지는 점에서 볼 때 “음악은 세계의 공통어이다” 라는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역사가 다르고 언어와 문화와 풍습이 다른 외국의 음악과 한국 음악을 동일시 할 수 없다. 즉, 말이 다르면 그 음악도 다르게 마련이다 (장사훈, 한국전통음악의 이해).

예를 들어 <라 트라비아타> 중의 축배의 노래의 “마시자 마시자”가 ‘마’보다 ‘시’에 강세가 들어가고, 우편 배달부가 비올레타에게 편지를 주면서 “편지 왔오”라고 하는데 끝말 ‘오’를 강하게 올려 부르는 것은 우리 말의 억양에서는 전혀 서투른 것이어서 관중의 웃음을 유발한다 (이혜구, 국악과 양악의 차이).

장사훈의 연구를 따르면 영어 찬송가와 한국말로 된 찬송가를 모두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말 찬송가는 강약이 전혀 어색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예수 따라가며’라는 찬송가는 못갖춘 마디에서 When we가 먼저 나오고 다음 walk부터 강박이 나온다. 그리하여 whenwe walk with the lord in the light of his word라고 할 때, when we를 약하게 부르고 나서 명사 등의 주요한 개념이 들어있는 walk, lord, light, word 등이 강박이 되어 명확하게 말과 노래의 억양이 조화된다.

그러나 우리 말 노래는 “예수 따라 가며 복음 순종하면”이 되는데, 주요한 단어인 예수와 복음은 약하게 부르고, 별 의미 없는 ‘따라’와 ‘며’와 ‘면’을 강하고 똑똑하게 발음하여 아주 이상한 노래가 되고 만다. 즉, 말과 노래가 따로 노는 셈이 되어 비문화적인 것이 된다.

빠르기

우리 음악은 서양음악보다 대체로 느리게 연주하여 명상음악과 같은 성격이 있고 여유롭고 착하게 느껴진다.
가곡ㆍ가사ㆍ시조 할 것이 정가는 특히 느리게 부른다. 가곡의 이삭대엽의 박자는 1분에 20~25박 정도 치는데, 메트로놈으로 측정이 안 되는 느린 빠르기이다.

우리 음악은 호흡을 서양음악은 심장의 맥동수를 기준하여 박자를 헤아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박자를 beat 또는 pulse라고 하는데 pulse는 심장의 맥동수이다. 서양음악은 심장의 음악, 우리 음악은 폐부의 음악이라고 한다 (한명희).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음악이므로 유현하고 편안하며 생명이 살아있다.

이어 부르기

전통음악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계기성과 연속성을 들 수 있다.

정악의 대명사격인 영산회상은 상영산-중영산-세영산-가락덜이-삼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으로 9곡이 끊어짐 없이 계속 연주된다. 물론 가운데 한 두곡을 별도로 연주할 수도 있다. 9곡의 조곡(組曲) 형태지만 서양음악의 조곡과는 완연히 다르고 9곡 전체가 어떤 한 분위기 속에서 점점 빨라지고 변화되면 영산회상이라는 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느린 진양조에서 시작하여 점점 빨라지다가 자진모리로 대미를 장식하는 산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판소리는 2시간~8시간 걸려서 한 사람에 의하여 완창된다.

정가의 대표적인 가곡도 이와 같이 초삭대엽에서 이삭-중거 등을 거쳐 빠르기와 표현방법이 변화되다가 다시 초삭대엽과 같은 빠르기의 태평가로 대단원을 맺는다.

뮐러의 시를 노래로 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레방아간 집의 아가씨(20곡)’ ‘겨울나그네 (24곡)’ 같은 곡은 수십 개의 가곡이 (줄거리 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음악적으로는 각기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 노래는 이와 같이 계기성을 지녔고 거시적이고 전체적이다 할 수 있다.

한영희는 이 성격을 대륙을 웅비하던 우리 조상들의 외유내강하고 문무겸전, 仁善과 武勇을 함께 갖춘 끈기 있는 민족성에서 찾고 있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夷라는 글자에는 어진사람이라는 뜻(-‘說文解字’)과 大弓을 사용하는 용감한 사람이 뜻이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음악가 아렌 호바네스가 쓴 '한국 음악의 인상' 이라는 글에 나오는 소남 이주환선생의 음악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면서 정가 전반에 걸친 기초적 이해를 위한 이 글을 마친다.

" 수년 전 내가 가곡(歌曲)을 레코드로 들었을 때에는 이 숭엄하고 아득한 천악(天樂)을 연주한 한국의 훌륭한 음악가를 만날 특전을 가지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국립국악원에서 이주환씨가 노래한 이 음악을 들은 경험은 내 일생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길이 간직할 것이다." (성경린).

*** 최정상의 훌륭한 예술을 알아보는 대가의 안목에는 동서 고금이 없는 것이다.